갓 딴 호두 좋아하는 사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도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깊은 추억이었다.

 

매년 추석 당일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 댁에 내려간다. 

 

복작복작한 할머니댁 안에서 밖에 나가길 좋아하는 애는 나밖에 없다. 

 

가을인데도 모기가 극성인 남도. 모기 때문인지 아니면 21세기 청년들의 귀차니즘 때문인지 내가 나가서 호두를 따자 하면 사촌들 모두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 결국 나랑 아빠, 그리고 아직 어린 사촌 아가들 몇몇만이 집 밖을 나선다.

 

 

몇십 년 전 외가댁이었던 그 자리, 엄마가 나고 자랐던 그 자리에 호두나무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 나무는 비탈길 옆에 심어져 길 위로 길게 가지를 뻗고 있다. 

 

비탈길 제일 아래에는 이미 검게 푹 익은 호두 열매들이 데구르 굴러 내려와 모여 있다. 몇몇은 다람쥐가 파먹어 속이 파이고 껍질만 남은 오래다.

 

 

아빠는 감홍시 장대로 호두 열매를 떨구다가 호두나무에 오른다. 아빠가 호두나무를 흔들면 큼지막한 호두 열매들이 퍽퍽 소리를 내며 비탈길로 굴러 떨어진다. 나와 사촌 동생들은 발로 검 초록색 과육을 비벼 호두를 꺼내 빨간 바가지에 담아 옮긴다.

 

 

도시생활 n년차. 갓 딴 호두의 맛이 그립다. 

 

방금 딴 호두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거다. 

 

과육에 갇혀있다 모습을 드러낸 호두 껍질은 아직 촉촉하고 끈적거린다. 망치로 껍질을 부수고 안의 알맹이를 조심스레 꺼낸다. 연갈색의 속껍질은 손톱으로 살짝 긁어내기만 해도 비닐처럼 쉽게 벗겨진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알맹이는 새하얗고 촉촉하고 기름지다. 씹으면 건 호두처럼 단단하지 않고 아삭하다. 건 호두처럼 기름지지만 촉촉하다. 나중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된다면, 마당에 꼭 호두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다.